조용한 퇴사를 만드는 '보어아웃'

조용한 퇴사를 만드는 '보어아웃'

최근 주변에서 "나 번아웃 온 것 같아"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쉽게 만납니다. 이는 과도한 성취만을 위해 달려가는 현대 사회의 어두운 이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혹시 우리가 경험하는 것이 번아웃이 아니라, '보어아웃'일 수도 있다는 생각 해보셨나요?

번아웃이 과도한 업무에서 비롯된 탈진 상태라면, 보어아웃은 정반대입니다. 맡은 일이 무의미하고 더 큰 맥락과 연결되지 못한다고 느낄 때 발생하는 탈진 상태죠. 번아웃만큼 주목받지는 못했지만, 전문가들은 보어아웃 역시 모든 산업에서 흔히 나타나며 직원들의 정신적, 신체적 건강에 동일하게 해로운 영향을 미친다고 경고합니다.

AI가 범람하고 변화 속도가 빨라진 지금, 우리는 '왜 이 일을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더 자주 직면하고 있습니다. 이제 보어아웃 또한 번아웃만큼이나 진지하게 논의되어야 할 중요한 직장 문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보어아웃이란 정확히 무엇인가요?

EM 리옹 경영대학원의 조직 행동학 교수인 로타 하르주(Lotta Harju)는 보어아웃을 오랫동안 연구해왔습니다. 그녀는 반복 업무, 장기간 도전 의식의 부재 등 여러 요인이 영향을 미치지만, 핵심은 무의미함이라고 말합니다. “일이 진정한 목적을 갖지 못한다는 경험, 즉 아무 의미가 없다는 느낌”이 보어아웃의 핵심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녀는 핀란드 87개 기관의 근로자 1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만성적으로 무의미함을 느끼는 것이 직원들의 이직률, 조기 퇴사, 낮은 몰입도, 그리고 스트레스 증가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또 다른 연구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2021년 터키 정부 기관의 186명을 조사했을 때 보어아웃을 겪는 이들이 우울, 불안, 불면증과 같은 문제를 경험했고, 이는 직장 밖 생활에도 이어졌습니다. 결국 이 상태가 장기화되면, 개인의 삶과 조직 성과 모두에 심각한 영향을 준다는 것입니다.

보어아웃, 왜 해결이 어려운가?

보어아웃은 번아웃과 달리 겉으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하르주 교수는 "지루함에 빠진 사람들은 육체적으로는 출근하지만 정신적으로는 부재한 상태로 꽤 오랫동안 버틸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더 큰 문제는 조직 문화입니다. 과도한 야근과 성과 압박은 번아웃으로 이어진다고 공론화되지만, 보어아웃은 흔히 “동기 부족”이라는 개인 문제로 낙인찍힙니다. 직원 입장에서는 상사나 HR에게 이 문제를 꺼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 은밀하고, 더 오래 지속됩니다.

오늘날 우리가 자주 말하는 ‘조용한 퇴사(quiet quitting)’의 그림자가 사실 보어아웃일지도 모릅니다. 몰래 웹 서핑, 온라인 쇼핑, 모바일 게임 등으로 시간을 채우는 모습은 단순한 태만이 아니라, 이미 만연한 그들의 보어아웃에 대한 행동일 수 있습니다.

해결책은 무엇인가?

보어아웃 극복은 개인의 책임만은 아닙니다. 2021년 연구를 이끈 파흐리 오즈순구르 교수는 “업무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직원만의 몫이 아니다. 사람들이 가치 있다고 느끼게 하는 문화를 만드는 것은 경영진의 책임이다”라고 강조합니다.

하르주 교수 역시 ‘좋은 리더십’을 예방책으로 강조합니다. 리더는 직원이 자신의 일이 왜 가치 있고 중요한지를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합니다. 매일 가슴 뛰는 일은 아니더라도, 일의 맥락과 의미를 느끼는 순간은 필요합니다. 또한 직장 내에서 인정받는 경험이나 건강한 인간관계는 지루한 업무를 완충하고, 의미를 더해줄 수 있습니다.

보어아웃, 이제 피할 수 없는 현실

팬데믹 이후 많은 사람이 자신의 직업과 삶의 의미를 다시 바라보고 있습니다. 하르주 교수는 “오늘날 사람들이 직장에서 만족감과 흥미를 느껴야 한다는 강화된 문화적 규범이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번아웃, 워라밸, 원격근무가 중요한 주제로 떠오른 것처럼, 이제는 보어아웃도 논의의 장으로 끌어올려야 합니다.

“직원의 웰빙을 단순히 스트레스와 번아웃의 관점에서만 바라보는 사고방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하르주 교수의 말처럼, 보어아웃을 포함시킴으로써 우리는 좋은 직장 생활을 만드는 요소를 더 넓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결국 보어아웃은 때로는 다른 경력이나 조직 내 새로운 역할로 이어지는 전환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개인과 조직 모두 그 신호를 무시하지 않고 받아들일 때만 가능합니다.

GLOW의 질문

  • 최근에 마지막으로 “내 일이 정말 의미 있다”고 느낀 순간이 언제였나요?
  • 당신의 팀은 무의미함의 함정에 빠져 있지는 않나요?
  • 만약 오늘 누군가 보어아웃의 신호를 보낸다면 그것을 알아차릴 수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