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절대 바뀌지 않아. 진짜?

사람은 절대 바뀌지 않아. 진짜?

 목적 있는 시선이 만드는 변화, “Seeing is Believing”의 진실

“사람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이 말은 오랜 세월 동안 냉소와 체념을 정당화하는 구실로 사용되어 왔다. 그러나 이는 인간의 삶을 지나치게 단순화한 오류이자, 변화의 가능성을 부정하는 위험한 자기암시다. 만약 이 주장이 옳다면, 성장이라는 개념 자체가 무의미해지고, 배움과 성찰, 노력과 희망은 모두 헛된 일이 되고 만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수없이 증명해 왔다. 인간은 변한다. 그리고 그 변화의 동력은 우리가 무엇을 바라보는가, 다시 말해 시선에 달려 있다.

변화의 순환: 정체성에서 행동으로

인간의 내적 변화는 일정한 순환 구조를 따른다. 정체성 → 믿음 → 행동 → 정체성 강화. 정체성은 믿음을 낳고, 믿음은 행동을 이끌며, 반복된 행동은 다시 정체성을 굳힌다. 이 과정의 출발점이 바로 무엇을 바라보는가이다. 눈과 마음, 머리가 머무는 곳은 믿음의 씨앗이 되고, 믿음은 행동을 낳으며, 행동은 정체성을 다시 다져 나간다. 결국 바라봄이 곧 믿음이 되고, 믿음은 행동으로, 행동은 정체성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 점에서 “Seeing is believing”은 단순한 관용구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변하는 메커니즘을 정확히 짚은 통찰이다. 보는 것이 곧 믿음이 되고, 믿음이 곧 삶을 바꾼다.

목적 없는 시선은 표류를 낳는다

그러나 단순히 “본다”는 행위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여기에는 반드시 목적의식이 더해져야 한다. 목적의식 없는 시선은 파도에 떠내려가는 작은 배와 같다. 방향 없이 흔들리며, 무가치한 자극과 소모적인 욕망에 이끌려 결국 아무 의미 없는 변화만을 낳는다.

오늘날 우리는 정보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무심코 핸드폰 화면을 내리며 바라보는 이미지와 메시지들은 우리의 무의식을 점령한다. 그 결과, 비교와 불안, 무력감이 믿음으로 자리 잡고, 그것이 행동으로 이어지며, 정체성마저 뒤흔든다. 변화를 부정하는 이들이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이유는 어쩌면 바로 여기 있다. 그들의 시선이 이미 무목적적 표류 속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목적 있는 시선이 만드는 도약

반대로, 분명한 목표와 가치 위에 고정된 시선은 전혀 다른 결과를 낳는다. 같은 풍경도 다르게 해석되고, 같은 고난조차도 성장의 연료로 바뀐다. 예컨대 운동을 시작한 사람이 처음에는 억지로 몸을 움직이다가, 시간이 흐르며 “나는 운동하는 사람”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갖게 되는 과정이 그렇다. 시선이 건강이라는 목적에 고정될 때, 작은 행동은 습관이 되고, 습관은 정체성을 바꿔 결국 삶을 새롭게 빚어낸다.

변하지 않는 인간은 없다

따라서 “사람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는 주장은 사실을 왜곡할 뿐 아니라, 인간의 가능성을 억누르는 폭력적 사고다. 우리는 끊임없이 변한다. 다만 그 변화가 성장으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는 시선이 잘못된 곳에 고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변하지 않는 인간은 없다. 다만 목적 없는 시선에 머무는 인간만 있을 뿐이다.

오늘의 시선이 내일의 나를 빚는다

결국 핵심은 질문 하나로 귀결된다. 나는 지금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가, 그리고 왜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우리의 믿음을 만들고, 믿음이 행동을, 행동이 정체성을 형성한다.

“Seeing is believing”

그러나 그 ‘seeing’이 목적의식을 담고 있을 때만, 그것은 진정한 변화의 힘으로 작동한다. 우리는 모두 변화할 수 있다. 변화는 시선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목적 있는 시선만이 우리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끈다.